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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 서평] 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뜨끈한 꿀배 2025. 5. 20. 10:00

요즘은 짧지만 묵직한 울림을 주는 이야기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그런 순간에 내게 다가온 책이었다.

솔직히, 23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 하도 인생책이라고 추천하는 사람이 많았기에 눈길이 가기도 했다. 킬리언 머피가 소설을 읽고 한눈에 반해 영화로 제작했다는 얘기에 혹한 것도 사실이다. 아일랜드 출신인 그가 아일랜드의 대표 작가의 소설을 읽고 영화까지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얼마나 매력적인 소설이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에 홀딱 반하게 된건지 궁금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신형철, 르포작가 은유 추천 * 2022 오웰상 소설 부문 수상 * 킬리언 머피 주연·제작 영화화 2023년 4월 국내에 처음 소개된 『맡겨진 소녀』로 국내 문인들과 문학 독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은 클레어 키건의 대표작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다산책방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작가가 전작 『맡겨진 소녀』 이후 11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소설로, 자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거장의 반열에 오른 키건에게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2022년
저자
클레어 키건
출판
다산책방
출판일
2023.11.27

 

 

크리스마스의 따뜻함, 기묘한 냉기 

 

 
 

왜 펄롱은 다른 남자들처럼 미사 마치고 맥주 한두 잔 마시면서 쉬고 즐기고 저녁 배부르게 먹고 불가에서 신문을 보다가 잠들 수 없는 걸까?

 

이야기의 배경은 1985년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주인공 빌 펄롱은 석탄과 장작을 배달하며 아내와 다섯 딸과 살아가는 평범한 중년 남성이다.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의 일상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평화로워 보인다. 그러나 어느 날, 지역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간 빌은 그곳에서 차가운 방에 갇힌 한 소녀를 마주하게 된다. 이 사건은 곧, 지역 사회가 묵인해온 진실, 종교의 이름으로 포장된 위선과 폭력. 소설은 ‘막달레나 세탁소’라는 아일랜드의 어두운 역사를 배경에 깔고 '지금 이 자리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부당함을 보고도 외면하지 않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거창한 구원이 아닌 사소한 용기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이 소설은 거창한 영웅 서사를 그리지 않는다. 빌 펄롱은 위대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다만, 어느 순간 ‘외면하지 않기로’ 결심했을 뿐이다. 책 전체에 과장된 묘사도, 극적인 전개도 없다. 아마 '사이다 전개'에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내내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이 책이 별로 입맛에 맞지 않을 것이다. 빌 펄롱의 평범한 삶이 쭉 이어지고, 그가 일상을 보내면서 심장을 쿡쿡 죄는 양심 탓에 괴로워하는 게 책의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라보면서 그러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과연 나라면 어땠을까? 나라면 바로 그것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아니, 나는 어쩌면, 다른이들처럼 말했을지도 모른다. "너무 깊게 관여하지마. 그건 우리가 알아야할 일이 아니야."라고 말이다.

 

'사소한 것들'이 쌓여 이루는 인생

 

제목 그대로, 이 소설은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창밖으로 스치는 바람, 아이들의 웃음소리, 배달 중 마주치는 이웃의 표정, 부부가 침실에서 나누는 대화. 모두 너무 작아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그 작은 것들이 쌓여 한 사람의 선택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말한다. 어쩌면 그 사소한 용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묵직한 울림을 주는 소설이다. 누군가는 이것을 허무하다고 하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어떤 거창한 서사보다 더 진실되고 인간적인 감정이 담겨 있다. 읽는 내내 복잡한 감정보다 단순하고 맑은 질문이 남는다.


나는 지금, 올바른 선택을 하고 있는가?

 

화려하지 않지만, 끝내 오래 남는 이야기. 이 겨울, 마음을 데워줄 단 한 권의 책을 찾고 있다면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추천하고 싶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막달레나 세탁소는 막달레나 정신병원으로도 불렸다. 로마 카톡릭 수도회에서 운영하던 시설로, 18세기부터 20세기 후반까지 운영되었다. 표면적으로 "타락한 여성들"을 수용한다는 명분으로 설립되었으나 고아, 학대 피해자, 정신 이상자, 성적으로 방종하다는 평판이 있는 여성, 심지어 외모가 아름다워 남자들을 타락시킬 위험이 있는 젊은 여성까지 수용되었다고 한다. 유튜브에 검색하면 해당 사건을 다룬 영상들이 많은데, 소설-영화와 엮어 가장 알기 쉽게 설명했다고 생각하는 영상을 하나 추천하려 한다. 소설로 인해 해당 사건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https://youtu.be/uxjKbe6wsyo?si=7E_yIflPikjoN7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