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 서평] 살인 재능 - 피터 스완슨
최근 ‘훔친책’ 유튜브에서 피터 스완슨의 신작 <살인 재능>을 소개한 쇼츠를 보고 바로 읽기 시작했다. 귀여운 토끼들이 나와서 왱알왱알 설명해주는 게 참 귀엽다. 내용은 전혀 귀엽지 않지만.
릴리 킨트너라는 캐릭터가 무척이나 매력적이게 그려졌는데 찾아보니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라는 작가의 이전 작품의 주인공 캐릭터라고 한다! 그것도 읽어봐야겠다.
- 저자
- 피터 스완슨
- 출판
- 푸른숲
- 출판일
- 2024.08.27
남편이 살인자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그리고...
자신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을 한 그를 보자 어쩐지 불안해졌다. 짐을 챙기고 차 문을 잠근 그는 잠시 자리에 서서 석양을 바라봤다. 그의 입은 살짝 벌어져 있었고 텅 빈 두 눈은 무심해보였다. 그녀의 눈에 그의 가슴이 부풀며 깊이 심호흡 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가 고개를 흔들자 표정이 달라졌다. 그녀가 아는, 어리숙한 듯 다정한 앨런의 얼굴로 돌아왔다.
이야기는 도서관 사서 마사가 남편 앨런의 수상한 출장을 의심하면서 시작된다. 그는 출장 갈 때마다 그 지역에서 여성 실종이나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처음에는 우연이라 생각하려 하지만, 반복되는 사건들 속에서 마사는 서서히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어간다.
마사는 과거 대학 시절 자신을 도와줬던 릴리 킨트너를 찾아 이 문제에 대해 토로한다. 문제는 이 릴리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릴리는 예쁘고 창백한 마사의 대학 동기이다. 어쩐지 싸늘한 말을 하곤 했던 마사의 친구. 나는 릴리가 그저 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소설의 중후반부를 지나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단연 릴리 킨트너가 된다.
작가가 그리는 뒤틀린 평온함
"그리고 네가 마침 와서 말인데, 내가 너를 선택하지 않은 것 때문에 나한테 화가 난 건 알겠어. 하지만 너도 굉장히 쉬운 상대였을 거야. 넌 이미 괴물이잖아, 릴리. 동족끼리는 알아보는 법이거든."
"이봐, 이선"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나는 괴물이 맞아. 그거 잊지마. 알겠어?"
<살인 재능>은 한 챕터, 한 챕터를 넘길 때마다 긴장감을 자아낸다. 화려한 반전이나 폭력적인 전개 없이도, 그저 일상적인 장면 속에서 서서히 스며드는 의심과 불안감이 독자를 조용히 조여온다. 특히 좋았던 건 ‘릴리’라는 캐릭터의 활용이었다. 단지 과거 등장 인물을 끌어온 게 아니라, 그녀가 마사의 사건에 개입하면서 보여주는 냉정함과 합리적인 광기가 너무도 인상 깊었다.
살인 재능에는 찌질한 남자 캐릭터가 많다. 음, 사실 남자 캐릭터 전부가 찌질하다고 볼 수 있다. 이선은 자아도취에 빠진 남성이고, 그 느낌을 받기 위해 가장 저열한 방법을 실행하는 사람이다. 그가 릴리에게 동족끼리는 알아보는 법이야. 라는 말을 한 걸 곱씹어볼수록 참 재미있다.
뭐랄까, 가짜 광기와 진짜 광기를 보는 느낌이랄까.
이선: 크큭.. 나는 짱이야. 내가 최고라고. 바보같은 인간들.
릴리: 뭐야? 산소아까워. 저놈 세상에서 없애야지
정리하자면 뭐 이런 느낌. 이선은 릴리와 동질감을 느낄지 몰라도 내가볼 때는 실제로 이선은 릴리와 발톱때만큼 닮았을거다.
아쉬웠던 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초장부터 여자가 죽고 시작하고, 여자가 죽고, 여자만 죽고 뭐 그런 느낌이다. 큭. 큭. 나는야 싸패 살인마. 사회적 약자를 골라 살해하며 만족감을 키운다네. 라는 건 지나치게 진부하다.
범인이 일찍 밝혀지는 점도 어라? 라고 생각한다. 추리물의 느낌을 좀 더 길게 가져갔으면 좋았을텐데 싶다.
초-중반부에 마사가 피해자 정보를 입수하는 과정은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아무리 불안에 사로잡힌 아내라지만, 경찰이 민간인에게 살인사건 피해자의 신원과 브로치 사진까지 넘겨주는 건 설득력이 부족하다. 현실적인 개연성보다는 전개 속도를 위한 선택처럼 보였고, 이 점은 몰입을 방해했다. 아니면 외국은 그러한가? 의문이 들기도 하다. 형사들이 마사에게 정보를 주는 행위는 수사기밀누설 그 이상 그 이하로도 보이지 않는다.
마무리
<살인 재능>은 흥미로 읽기에 매우 괜찮은 책이다. 릴리의 등장은 강렬하고 ‘악을 심판하는 정의는 누가 내리는가’라는 질문이 고개를 들게 한다. 릴리라는 인물 덕분에 이 소설은 그저 그런 추리물이 아니라, 도덕과 감정의 회색지대를 탐색하는 스릴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 책의 에필로그가 릴리의 매력을 반감시킨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정 반대로 그 에필로그가 있기에 릴리라는 캐릭터의 매력이 극대화된다고 느낀다. 릴리의 살인에는 언제나 적당한 이유가 있다. 릴리는 쾌락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지만, 그녀의 이유는 제법 '다크 히어로'같기도 하다.